[인터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치지 않도록”… 김새섬 대표가 만든 온라인 지식 공동체 ‘그믐’

[인터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치지 않도록”… 김새섬 대표가 만든 온라인 지식 공동체 ‘그믐’

독서 인구를 지탱하고 퍼뜨리기 위해, 누군가는 꾸준히 불을 지펴야 합니다

  • 독서 플랫폼 ‘그믐’ 운영자 김새섬 대표를 만나다

코로나 이후, 삶의 방식은 물론이고 일상의 균형도 크게 흔들렸다. 누군가는 이직에 실패했고, 또 누군가는 낯선 섬에 도착해 새로운 삶의 방식과 마주했다. 그리고 거기서 ‘공동체’의 필요를 절감했다.
온라인 독서 플랫폼 ‘그믐’을 만든 김새섬 대표의 이야기다.

‘그믐’은 단순한 온라인 독서 모임이 아니다. 29일간 열리는 토론, ‘좋아요’가 없는 게시판, 책을 고르는 안목을 키우는 사람들… 그믐은 하나의 독서 운동이자 조용한 반란이다. 김 대표를 만나 그믐의 철학과 운영 원칙, 그리고 그가 꿈꾸는 지식 공동체의 미래를 들어봤다.


Q. ‘그믐’을 만들게 된 계기부터 궁금합니다.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나요?

A. 처음부터 거창한 문제의식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사실은 이직 실패와 우울증이 시작이었죠. 코로나 시기라 국경도 막히고, 남편이 우울해하는 저를 데리고 제주도로 갔어요. 숙소 창밖에 보이던 섬의 이름이 ‘새섬’이었고, 그걸 제 이름으로 삼았죠. ‘앞으로 어떻게 살지?’ 자문하는 시간이었어요. 은퇴? 재취업? 새로운 직업?
그러다가 깨달았어요. “의미 있는 일을 하자. 돈을 적게 벌어도, 허무하지 않은 삶을 살자.” 사회에 보탬이 되고, 나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고, 그렇게 ‘그믐’( https://www.gmeum.com)이 태어났어요.


Q. ‘그믐’은 ‘지식’과 ‘공동체’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균형으로 운영되고 있나요?

A. 흔히들 ‘독서 공동체’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그보다 더 넓은 개념인 ‘지식 공동체’를 지향해요. 단순히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서로를 위로하고 돕고,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며 지식으로 축적하는 것이죠.
책을 쓰는 사람을 응원하고, 독자들끼리는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눕니다. 베스트셀러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좋은 책을 발굴해 이야기해요. 그렇게 생긴 기록은 미래 세대에게 귀중한 지식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문명은 읽고 쓰는 삶 위에 존재하잖아요.


Q. 온라인 기반의 플랫폼이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요?

A. 가장 큰 장점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없다는 것이에요. 말 대신 글로 토론하니 언제든, 어디서든 참여할 수 있어요. 해외에서도 모임이 열립니다.
또 한 가지 장점은 휘발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온라인 채팅이나 줌 모임은 기록이 남지 않지만, 그믐은 오랜 시간 동안 생각을 저장할 수 있어요.

단점도 있어요. 유대감이나 친밀감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종종 오프라인 모임도 병행해요. 또, 글은 말보다 뉘앙스가 덜 전달돼서 고민하시는 분들도 있죠. 하지만 그건 표현력과 사고력을 기르는 연습이라고 생각해요.

 

                    지식공동체 ‘그믐’ 김새섬 대표 


Q. ‘좋아요’나 공감/비공감 기능이 없는 것도 특징인데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A. 다른 커뮤니티에선 ‘좋아요’가 많으면 그 의견이 좋은 것처럼 보이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숫자로 비교하는 방식이 싫었어요.
모든 글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어요. 그래서 그믐에선 공감 버튼 대신 ‘답댓글’을 권해요. 공감한다면 직접 말로 표현해보세요. 자연스럽게 더 깊이 생각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좋아요’가 없으니, 분란을 일으켜 관심을 끌려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사라졌어요. 관심을 얻지 못하니까요.


Q. 그믐은 ‘29일간의 토론’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A. 처음엔 사람들도 의아해했어요. “모임이 왜 끝나죠?” 하고요. 하지만 책 한 권 읽고 대화하기에 29일이면 충분해요. 이건 적당한 긴장감을 주기 위한 설정이에요.
또, 커뮤니티가 오래 지속될수록 진입장벽이 생기거든요. ‘그믐’은 끝이 정해져 있어서 오히려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분들이 많아요. 끝이 있어서 더 소중한 시간이 되는 거죠.


Q. 그믐을 통해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A. 독서 인구를 지탱하고 퍼뜨리고 싶어요. 책을 읽는다고 반드시 성공하진 않아요. 하지만 삶에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고 믿어요.
저는 도서관 책에 큰 도움을 받았어요. 유명한 책도 좋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을 발굴해 조명하고 싶어요. 혼자선 어렵잖아요. 그래서 함께 읽고 함께 북돋우는 문화,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읽고 쓰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 사회는 여전히 따뜻하고 건강할 수 있다고 믿어요.


Q.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새로운 기능이나 협업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A. 교보문고의 sam 구독 서비스, 문예출판사와 협업 중이고요, 최근에는 문화예술위원회 2025년 사업보고 현장 발표회에 패널로 초청도 받았어요. 문예위에서도 협업 의사를 밝혀주셨고요.
‘그믐’은 플랫폼이에요. 우리가 모든 걸 끌고 가지 않아요. 자발적인 모임이 중심이에요. 지금까지 열린 독서 모임이 2000개가 넘고, 그 중 우리가 직접 연 건 10%도 안 돼요.
불편함도 있지만, 그걸 감수하고 함께 해주는 이용자 분들께 항상 감사드려요.


기록은 기억을 이깁니다. 김새섬 대표가 만든 ‘그믐’은 책을 통해 서로를 기억하고, 함께 성장하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경쟁보다는 연대, 평가보다는 공감을 중심에 둔 이 플랫폼이 더 많은 사람들의 ‘읽고 쓰는 삶’을 견인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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