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 시인)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더 먼저 일어난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푸리가 눕는다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풀’로 형상화한 시입니다.

한마디로 풀, 즉 약자의 강인한 생명력을 주제로 한 시입니다.

이 약자는 흔히 민중·민족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반면 ‘바람’은 지배계층, 또는 독재, 불의와 탄압,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몰아쳐도 그 바람의 힘으로 풀뿌리까지 뽑지는 못하듯이,

아무리 지배 계층이 억압하고 짓밟아도 민중은 끝내 다시 일어서게 되지요.

혹은 거대한 외세의 물결 속에서도 끝내 정통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힘을 노래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민족의 은근과 끈기에 어울리는 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