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때면 더 생각나는 노무현 대통령, 그와 이명박 대통령 간에 이런 스토리가 있었다니, 근대사를 잘 알지 못하는 젊은 친구들과 학생들이 읽어봐도 재미 있을 것 같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노무현과 이명박의 첫 만남 이야기
“1996년의 노무현과 이명박을 빼고는 그 이후의 현대 정치사를 말할 수 없다!”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노무현과 이명박은 각자의 정치 노선에서 정면으로 마주칠 일이 하나도 없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두 사람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종로구에 나란히 출마해 자웅을 겨룬 적이 있다. 노무현과 이명박은 수백 페이지짜리 자서전(《운명이다》)과 회고록(《대통령의 시간》)을 남겼지만 1996년 종로 선거 이야기를 고작 두 페이지 남짓 다뤘다. 왜 그랬을까? 노무현은 개인 선거사에서 득표율 17.66퍼센트라는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싸웠던 부산 선거와 달리 명분도 없는 패배였다. 이명박은 선거 부정을 저질렀고, 그것을 덮기 위해 더 큰 부정을 저질렀다. 즉 노무현과 이명박 모두에게 1996년 종로는 기억하고 싶지 않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시공간이었다. 당사자들이 기억하지 않으니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고 그래서 1996년 종로 선거는 여전히 낯선 이야기다.
그러나 원칙과 명분을 지키고 싶어도 현실에 부딪혀 자꾸만 좌절하게 되는 노무현과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이명박의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시기가 바로 이때다. 노무현과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바로 그 시기에 그들의 정치적 지향점은 어디를 향해 있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훗날 그들이 만들어간 대한민국과 그 운명을 되짚어볼 수 있다. 그래서 손석희(JTBC 보도부문 사장) 역시 “이 책이 왜 필요한지 알 것 같다. 1996년의 노무현과 이명박을 빼고는 그 이후의 현대 정치사를 말할 수 없지 않겠는가”라는 말로 1996년의 노무현과 이명박을 소환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1996년 노무현과 이명박의 첫 만남을 생생하게 살려낸 이 책을 통해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아 퍼즐을 완성하듯 현대 정치사의 전반적인 모습과 그 의미를 새롭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의 낙선에도 원칙과 신념을 지킨 노무현
야망이 있는 냉철한 승부사 이명박
정반대의 생을 살던 두 사람이 1996년 종로에서 부딪히고 엇갈리며 펼친 운명의 대결
이 책은 1992년 부산 동구에서 낙선한 노무현과 현대를 퇴직하고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에 첫발을 내디딘 이명박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5공 청문회 스타이자 인권 변호사로 부산의 자랑이었던 노무현은 3당 합당과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14대 총선에 이어 제1회 지방선거까지 연이어 패배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서울 종로구에 출마를 결심한다. 풋내기 초선 의원이었던 이명박 역시 정치 1번지라고 불리는 서울 종로구에 공천되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고 이용하며 운명적인 대결을 펼친다. 이 대결은 이명박의 화려한 승리로 막을 내리는 듯했으나 선거 부정이 밝혀지면서 결국 노무현이 종로구를 이어받는 것으로 끝이 난다.
훗날 대통령이 되는 두 사람이 한 선거구에서 붙었다. 한 사람은 이겼고, 한 사람은 패배했다. 그런데 이긴 사람이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나게 되면서 졌던 사람이 그 자리를 꿰찼다. 그 사람은 대통령이 됐고, 물러났던 사람은 다시 돌아와 이어서 대통령이 됐다. 그리고 그 이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2009년 5월의 비극이 벌어졌고 남은 사람은 현재 구치소에 있다. 어느 한쪽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는 이들의 인연은 대통령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미래를 알지 못한 채 두 사람이 살고 있는 1996년 종로를 따라가다 보면 이들의 질긴 인연과 엇갈림이 이곳에서 이미 예견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까지 불러일으킨다.
“노무현은 왜 실패했는가”
“이명박의 신화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이제 한국 정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모든 질문의 답은 1996년 종로에서 찾을 수 있다!
노무현은 여론조사에서 언제나 1위를 차지하며 고른 신뢰와 사랑을 받는 정치인이었으나 극복할 수 없는 지역감정, 보수 언론의 견제, 정치인을 하기엔 넉넉하지 않았던 형편 등 여러 현실에 부딪혀 실패와 좌절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의 원칙과 신념을 따르기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끝내 자신이 꿈꾼 길을 가고야 말았고, 정치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든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명박은 3김 정치와 민주화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벗어나 오로지 경제와 개발을 강조한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등장은 경제 성장을 원했던 시대의 요구와 맞아떨어져 종로 선거는 물론이고 훗날 대통령 선거에서까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정치인 이명박의 초기 모습은 그의 성공 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너졌는지, 그리고 2018년 현재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유추하게 만든다.
1996년 종로를 중심으로 한 노무현과 이명박의 이야기는 극히 일부분의 시간을 담고 있지만 두 사람의 전반적인 삶과 정치적 행보를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던져준다. 또한 당시 한국 사회가 겪고 있었던 혼란과 변화를 통해 한국 정치의 미래를 가늠하고, 독재와 지역감정의 그늘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3김 시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대사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JTBC 〈정치부 회의〉에서 양 반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JTBC 정치2부 양원보 기자는 노무현과 이명박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양한 책은 물론 각종 뉴스와 기사, 주변인들과의 인터뷰 등을 토대로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1996년의 종로를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기자 특유의 취재력이 돋보이는 이 책은 구체적인 자료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인 서술을 유지하고 있으며, 자료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역동적으로 재구성해 마치 한 편의 흥미진진한 정치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까지 안겨준다.
책속으로
두 명의 대통령이 한 선거구에서 붙었다. 한 사람은 이겼고 한 사람은 패배했다. 그런데 이긴 사람이 물러나자 졌던 사람이 그 자리를 꿰찼다. 그 사람은 대통령이 됐고, 물러났던 사람은 다시 돌아와 이어서 대통령이 됐다. 그리고 그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을 사지로 몰았다. 살아남은 사람은 지금 구치소에 있다. 이건 운명 같다. 처절하게 슬픈 운명 같다. 엇갈린 운명이다. 종로 총선은 엇갈린 운명의 시작이다.
— p.6
정치인으로서 노무현의 약점 중 하나는 지나치게 ‘염치가 있다’는 거였다.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6월 초쯤이었다. 부산 서대신성당 주임을 맡고 있던 송기인 신부가 “성당에 큰 행사가 있으니 잠깐 들러달라”고 했다. 노무현 캠프 선거기획단장을 맡고 있던 설동일은 송기인의 속내를 알아차렸다. 선거운동을 하라고 판을 깔아주려는 거였다. 일러준 시간에 노무현을 데리고 성당을 찾았다. 하지만 노무현은 송기인에게 인사만 하고 성당을 서둘러 나오려고 했다. 당황한 설동일은 노무현의 팔을 잡고 막아섰다. “아따 변호사님예, 뭐 하시는 거라예. 이 사람들 이기 다 푠데……. 신부님이 괜히 오라 했겠는교? 악수도 쫌 하고…….” 노무현은 팔을 풀었다. “넘에 잔치 와가 그라믄 되겠나. 안 돼. 그라모 안 돼.” — p.46∼47
위기는 엉뚱한 데서 찾아왔다. 그의 자랑스러운 이력이 발목을 잡았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대통령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그를 옭아매고 있는 ‘재산 논란’의 시작이었다. (중략) 이명박은 재산 공개 엿새 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매각했다. 당시 그는 “재산 공개 때문이 아니라 일신상 사정에 의한 것”이라고 했지만 여론은 믿지 않았다. 80평짜리, 당시 시가로도 12억 원 상당의 아파트였다. 2018년 검찰 수사로 실소유가 입증되고 있는 도곡동 땅 의혹이 불거진 것도 이때부터였다.
— p.107∼108
선거공보에서도 노무현과 이명박은 달랐다. 노무현은 살아온 이력과 정치 그 자체에 집중했다. 왜 정치를 시작했는지, 어떻게 정치를 해왔는지, 왜 현실 정치에서 좌절했는지를 설명한 뒤 ‘정치 교체’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먼저 정치를 바꿔야 합니다. 종로가 바뀌면 한국 정치가 바뀝니다”라고 했다. (중략) 이명박의 선거공보는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경제’, ‘개발’로 가득하다. 슬로건부터가 아예 “이명박은 ‘경제’입니다”다. 그는“정치보다 경제에 치중할 때”라면서 “민주화가 됐고 정치 상황이 바뀐 만큼 경제를 아는 정치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 p.206∼208
후보들은 선거기간 동안 수입, 지출 내역을 정리한 회계 자료를 제출했다. 그런데 서울 종로에서 대단히 희한한 광경이 펼쳐졌다. “돈이 없어 선거운동도 제대로 못했다”던 자민련 김을동 후보가 최고액인 9,255만 원을 신고했다. 노무현은 그다음인 7,271만 원이었다. 노무현과 김을동은 재산 신고액만 260억 원에 달했던 이명박(7,149만 원)보다 씀씀이가 더 컸던 거다. 이종찬은 최소 금액인 6,819만 원을 적어냈다. 노무현은 황당했다.
— p.245
노무현이 13대 국회 때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본회의가 156회였다. 39번의 본회의가 열리고 닫히는 동안, 노무현은 밖에서 울고 웃고 때리고 터지고 있었다. (중략) “…… 그동안 저 혼자 무척 잘난 국회의원이라고 스스로 자부했었는데, 실제로 13대 국회 때나 떨어져 나가서 바깥에 있을 때나 일을 해보니까, 몇 가지 지식을 더 가지고 있다든지 몇 가지 논리적인 능력을 더 갖고 있다고 꼭 잘난 정치인은 아니라는 생각, 참 많이도 해봤습니다. (중략) 열심히 해서, 크게는 나라에 좀 보탬이 되면 좋겠고, 작게는 우리 정치인 모두가 국민들한테 존경받는 정치가 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