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국군의 모체인 국방경비대 창설 8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1946년 1월 15일 창설된 조선국방경비대는 대한민국 국군 역사의 신기원이다. 해방 직후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다른 무엇보다 창군에 대한 열망이 매우 강했다.
1945년 8월 해방이후 한반도는 미·소 군정 아래 놓였고 치안 공백과 이념 대립, 무장 세력의 난립으로 사회 질서는 극도로 불안정했다. 일본군이 철수한 자리를 대신할 국가방위 조직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국가의 주권조차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치안 유지와 국토방위의 필요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이에 미군정은 1945년 11월 3일 군정법령 제28호를 공포하여 국방사령부를 설치하고 국군창설 작업에 착수했다. 또 지금의 태릉에 군사영어학교를 설립하여 한국군 장교양성을 시작했고 이는 국군 창설의 인적기반이 되었다. 이어 1946년 1월 15일, 국방경비대가 공식 창설되면서 국군의 모체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정규 군사조직이 탄생된 것이다.
국방경비대는 초기에는 미군정의 지휘 아래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인인 송호성 총사령관을 중심으로 조직이 운영되었으며 서서히 자주국방의 초석을 다져 나갔다. 창설 당시 국방경비대는 장비와 예산, 훈련체계 모두가 열악한 상태였다. 소총조차 충분하지 않았고 병영시설과 군수체계도 미비했다.
그러나 장병들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임무를 수행했다. 이들의 희생과 헌신은 단순한 군사조직을 넘어 정신적 국가 수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방경비대는 대한민국 국군으로 개편되었다.
창설과정에서 국군은 우리 민족의 전통사상인 호국정신과 자주독립정신을 계승하고 1907년에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 된 대한제국 군대를 이어 의병, 독립군, 광복군의 역사적 전통을 간직한 자랑스러운 민족의 군대로 창군되었다.
따라서 초대 국방장관에 이범석 장군과 국방차관에 최용덕 장군 등 광복군 출신들을 등용하여 국군의 정통성이 광복군에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러나 우리 국군은 창군된 지 불과 2년도 안 되어 동족상잔의 6·25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를 맞았다.
전쟁 초기의 열세 속에서도 국군은 미국을 비롯한 우방 참전국과 함께 끝까지 싸우며 자유와 주권을 지켜냈고 그 정신적 뿌리는 국방경비대 창설 시기에 형성된 책임감과 희생정신에 있었다.
80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 국군은 첨단 과학기술과 강력한 연합 방위태세를 갖춘 세계 5위의 최정예 군대로 성장 발전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적인 군사력을 갖춘 대한민국 국군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다.
그 발전의 밑바탕에는 맨주먹으로 열악한 상황에서도 조국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 하나로 창설된 국방경비대의 희생과 헌신이 있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했다.
따라서 국방경비대 창설 80주년은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급변하는 안보상황 속에서 장병 모두가 국군의 존재 이유와 본연의 사명을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안찬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