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 그들이 숨기고 싶은 진실은 무엇인가

‘광주 5.18’ 그들이 숨기고 싶은 진실은 무엇인가?

 

 

1980년 5월 19일 밤 12시 전남 광주공설운동장에 요란한 굉음을 내는 대통령 전용헬기가 착륙하였다.

헬기에서 박정희, 전두환 중장, 노태우 소장, 박근혜, 박세직 준장이 내렸다.

박정희 일행은 전남도청을 잠시 들러 도지사로부터 상황보고를 받고 조선대에서 12시간 머물다 5월 20일 13시 2군단 특전공수여단 702특전공수연대 1대대 1중대 부대원들이 정비한 전남대 특전공수부대 주둔지로 이동하였다.

11사단 이기자부대에서 선발된 저격수 50여명이 전남대에 702특공연대와 주둔하였다.

전남대는 5.18 진압작전이 끝날 때까지 지휘본부가 되었다.

 

광주교도소에는 5월 19일 밤 10시에 수송헬기를 타고 온 경기도 광주 특전사령부 직할 1대대 병력 40여명과 박정희의 경호를 담당한 특전사령부 소속 606부대원 10여명이 주둔하였다.

김진 특전사 중위

2017년 자유한국당 대통령예비후보 김진이다.

이병호 특전사 대위

박근혜 정부 국정원장

조범현 특전사 상병

전 KIA타이거즈 감독 조범현이다.

조범현 전 감독에게 증언을 구하라.

1980년 5월 26일 밤 10시 전남도청수복작전을 수행한 부대이다.

 

보안사령관 전두환 중장

전두환은 육사12기를 졸업하였다.

미국 텍사스에서 특수작전 교육을 받았다.

국내에 귀국하여 거듭 승진하여 강원도 화천의 2군단 특전공수여단장을 역임하였다.

박정희는 전두환을 특수작전 통으로 여기고 신뢰하였다.

1980년 5월 18일 밤 10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특수작전 통으로서 광주 시위대 진압작전을 기획하였다.

진압작전의 요체는 경기도 광주 특전사령부 1대대와 2군단 특전공수 701.702연대가 전술을 펼쳐 시위대를 진압하는 것이었다.

특전사는 부사령관 박세직 준장이 책임자이고 특공대는 2군단 특전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이 책임자였다.

특수작전은 특전사가 핵심조로 타격하고 특공대가 지원하는 것이 대한민국 육군의 특수작전 전술의 정석이다.

2019년 12월 현재에도 대한민국 육군 특수작전의 정석은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시민들이 주축인 시위대를 진압하고 해산하는데 인명 살상이 따르는 육군 특수작전을 펼쳐야만 했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국민과 사법부가 심판하여할 대목이다.

이제 왜? 1980년 5월 19과 20일에 경기도 광주의 특전사령부 1대대와 춘천의 701.702특전공수연대 병력이 전남 광주에 내려와야만 했는가를 조금은 이해가 될 것이다.

 

2군단 특전공수여단장이 최세창 준장이었다.

701특전공수연대와 702특전공수연대는 2군단 특전공수여단의 예하부대이다.

최세창 준장은 보안사령관 전두환 중장의 명령으로 1980년 광주 5.18 진압작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최세창 준장은 1980년 5월 19일 밤9시에 강원도 화천에 소재하는 701.702특전공수연대 병력을 전남 광주로 무장하여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기차를 타고 이동한 이들 병력은 5월 20일 오전 7시 전남 광주 송정역에 도착하였다.

주둔지인 조선대와 전남대로 이동하였다.

 

참고: 대통령 문재인( 1974년~1977년 3월까지 군복무)은 경기도 광주 특전사령부 직할대대에서 복무하였다. 경희대 재학시 학생운동 전력이 문제되어 강원도 춘천의 2군단 특전공수여단 사령부로 전출되었다. 1974년 7개월간 2군단 특전공수여단장 전두환의 관사 당번병으로 보직 받아 이순자의 관사 가사도우미로 복무하였다.

오해를 하는 분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음해하려고 썼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적시한 것은 사실일 뿐이다.

 

조선대에 2군단 특전공수여단 701특전공수연대(강원도 화천 사창리 인근-춘천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함)1대대가 주둔하였다.

701연대장이 김대중 정부의 초대 국정원장인 이종찬이었다.

이종찬 대령은 1980년 5월 20일 조선대 무역학과 학생 회의실에서 부하간부 10여명(이병기 중사 등)이 여대생 15여명을 집단강간을 목격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1987년 이종찬 대령은 ROTC 학군단 장교출신으로 대한민국1호 장성이 되었다.

 

 

전남대에 주둔한 702특전공수연대장이 김진현(본적: 경북 청도, 육사 25기, 육군사관학교 일반대학 의탁교육생으로 선발되어 서울대학교에서 2년 수학하였다. 인터넷에 뜨는 경력사항에 서울대학교 졸업이라고 허위기재하였다. 1988년~1993년까지 안기부 제3국 2과장으로 활동하였다. 1995년 서울시립대 총장이 되었다.) 대령이었다.

 

702특전공수연대 1대대(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춘천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함)부대장 강창희(본적: 충남 대전, 육사 26기. 1981년 중령으로 예편하여 박정희로부터 광주 5.18 공적을 인정받아 민정당 국회의원이 되었다.)중령이었다.

 

참고

1995년에 방송한 MBC 드라마 ‘제4공화국’ 광주 5.18 부분의 허구

 

1995년 MBC에서 방영한 ‘제4공화국’ 드라마에서 1980년 5월 ‘광주5.18’ 진상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드라마 시나리오가 남산 안기부 제3국의 검열을 받은 것이었다.

심지어 안기부의 지시대로 시나리오와 극본을 변경하였다.

이유는 부대명칭과 소재지. 부대장의 보직명은 군사1급 기밀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목적은 다른데 있었다.

광주 5.18에 진압작전에 출동한 장성급 인사와 부대장과 부대원을 은폐하기 위한 술수였다.

2019년 12월 daum. naver의 백과사전, 블로그나 카페에서 ‘광주 5.18’을 소개하면서 여단장이나 사단장 및 부대명칭을 1995년 MBC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 방영한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역사 왜곡의 현장’인 셈이다.

현재 일반시민들과 배우는 학생들 심지어 정치 초년생들이 MBC ‘제4공화국’ 드라마의 ‘광주 5.18’ 부분을 진실로 믿고 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1995년 MBC 드라마 ‘제4공화국’에 방영한 광주 5.18 부분 중에서 몇 가지 수정해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전두환이 1974년 1공수여단장이라 소개했다. 1공수여단은 존재하지 않는 부대다. 1974년 전두환은 강원도 춘천에 소재하는 제2군단 특전공수여단장으로 보직 받아 근무하였다.

여담으로 공수여단이라 하면서 공수를 한자로 空輸라고 표현하였다. 여기서 공수는 공중에서 물자를 나르고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특전공수 할 때 공수는 空水라고 써야 옳은 표현이다.

공중과 물위에서도 전문화되고 특화된 다양한 전투를 실행할 수 있는 부대를 특전공수부대라고 하기 때문이다.

 

최세창 준장을 3공수여단장으로 소개하였다. 3공수여단은 존재하지 않는 부대다.

1980년 5월 최세창 준장은 2군단 특전공수여단 여단장으로 1974년 여단장이었던 전두환의 부름을 받아 전남 광주에 내려와 진압작전을 수행하였다.

1996년 최세창이 전두환.노태우와 재판을 받은 범죄명이 계엄법 위수령 위반사건이었다.

광주에서 시민들을 학살한 701.702특전공수연대의 책임자가 2군단 특전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쉬운 말로 풀이하면 1980년 5월 20일 계엄령이 발효된 상황에서 강원도 춘천의 주둔지를 이탈하여 군부대가 광주에 내려왔다는 이유였다.

최세창이 법의 심판을 받은 이유는 계엄법 위수령 위반 그게 전부였다.

 

박세직 준장을 1980년 5공수여단장으로 소개하였다.

5공수여단은 존재하지 않는 부대다.

1980년 당시 박세직은 경기도 광주에 소재하는 특전사령부 부사령관이었다.

1980년 5월 19일 박세직 준장은 광주 진압작전을 펼치기 위해 전두환 등과 광주에 내려왔다.

특전사령부 예하부대 1대대 병력이 수송헬기를 타고 광주에 내려왔다.

박세직은 이후 광주 진압작전의 공을 인정받아 서울시장과 1988년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이 되었다.

박세직은 광주 5.18 시민학살에 대해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

박희도 준장을 1980년 1공수여단장으로 소개하였다.

1공수여단은 존재하지 않는 부대다.

박희도 준장은 1980년 충남 천안 목천면에 소재하는 3군단 특전공수여단 여단장이었다.

박희도는 1980년 말 경기도 광주 특전사령부 특전사령관이 되었다.

 

서울 종로 보안사령부를 소개하면서 허삼수 대령을 인사과장으로 소개하였다.

사실은 1980년 2월에 미국에서 귀국한 지만원 중령이 대령으로 승진하여 보안사령부 인사과장으로 보임되었다.

지만원이 광주5.18에 북한군이 개입되었다는 주장을 계속 하는 이유가 자신이 광주5.18에 관련되었다는 이유도 한 부분을 차지한다.

 

 

702특전공수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장이 김관진(본적 : 전남 광양, 전 국방장관)중위였다.

 

특전공수부대원들은 부대명칭을 표시하는 비표와 관등 성명을 떼고 작전에 참여 하였다. 비표를 떼지 않은 702연대 행정반 위관과 병사의 702연대 마크를 본 시민이 7공수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참고: 광주 5.18 사진 등 영상자료에서 얼룩무늬(개구리 무늬)군복을 착용한 장병들을 볼 수 있다. 이 장병들이 701. 702특전공수연대 병력들이다.

 

2019년 광주 5.18 재단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사실들은 대부분 진실과 동 떨어진 거짓들이다.

2공수, 3공수, 6공수, 7공수, 11공수, 11대대, 15대대, 22대대 등은 안기부가 강원도 춘천 2군단 특전공수여단 소속의 701, 702특공연대와 경기도 광주 특전사령부 병력 등을 감추기 위한 술책으로 조작한 것들이다.

 

1980년 5월 18일부터 광주에서 계엄군으로 위장하여 활동한 폭압부대 출신 인사들

경기도 광주 특전사령부 부사령관 박세직 준장

강원도 화천 2군단 특전공수여단장 최세창(전 국방부장관)준장

701특전공수연대 연대장 이종찬(초대 국정원장)대령

702특전공수연대 연대장 김진현(전 서울시립대총장)대령

702연대 1대대장 강창희(전 국회의원)중령

702연대 연대본부 작전과 김무성(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대위

702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장 김관진(본적: 전남 광양, 박근혜 정부 전 국방부장관)중위

701연대본부 군수과 이병기(본적: 전북 익산, 이리공고 기계과 졸업,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서실장)중사

702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 정영철(본적: 전남 광주 동구, 청주기계공고 졸업, 박근혜의 가신 정윤회로 개명)중사

702연대 1대대 1중대 2소대 김성태(본적: 충남 홍성, 독립투사 김좌진장군의 직계후손, 안양공고 기계과 졸업, 2003년 강남대 법학과 졸업, 2019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중사

702특공연대 연대무전통신 김정봉(본적: 전북 익산, 유원공고 전자과 졸업, 1996년 유원공전 야간 졸업, 2019년 5월 현재 YTN과 연합뉴스 객원논설위원)하사

이만희(본적: 경북 예천, 육사34기. 2019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당시 종로 보안사령부 작전과 참모로 장세동 보안사 작전과장과 함께 광주에 파견온 인물, 육사에서 서울대 위탁교육 졸업생 )보안사 작전과 대위

 

특전사령부 1대대 김진(안양공고 전기과 졸업, 금오공대 전자과 졸업, ROTC 장교로 경기도 광주 특전사령부 입대, 중앙일보 기자, 전 중앙일보 객원논설위원, 2017년 자유한국당 대통령예비후보, 2019년 5월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중위, 1980년 5월19일 밤 12시 전남 광주교도소에 주둔한 특전사령부 1대대 중위

최창렬(본적: 충남 공주, 서울대 ROTC 중위로 전남 지역계엄사령부 작전과, 1980년 5월 전남 계엄사령부가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 현 전남 장성군)에 설치되었다. 2019년 현재 용인대 교수로 YTN 등에 출연)

백승주(본적: 경북 군위, 육사 38기. 2019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육군참모부 인사과 소위

정진석(본적: 충남 공주, 안기부에서 파견된 전 동아일보기자, 2019년 공주.부여 자유한국당 국회의원)702특공연대 1대대 1중대 행정반 일병으로 1980년 5월 21일 오후 3시 금남로에서 시민 4명을 대검으로 살해한 인물이다.

이현종(본적: 전북 익산, 전 MBC 기자, 2019년 12월 현재 문화일보 객원 논설위원으로 채널A와 MBC 2시 뉴스에 출연 중이다.)702특공연대 연대 행정반 이등병, 1980년 5월 22일 광주 북구 야산 암매장지에서 작업한 병사이다.

등이 광주 5.18의 주역들이다.

당시 이들과 함께 군복무한 장병들이 증언 할 것이다.

 

박정희는 미국에서 귀국하는 대한항공기 기내에서 1980년 5월 19일 01시부터 실탄지급을 하라고 명령하였다.

전두환은 시위진압작전의 총사령관인 박정희를 ‘총통 각하’로 예우하고 자신은 ‘사령관 각하’로 불리었다.

 

1980년 5월 20일 밤 21시경 박세직 준장, 박근혜가 광주교도소에 주둔하였던 특전사령부 1중대와 전남도청 탈환목적으로 도청에 접근하였다.

전남도청탈환기습작전이었다.

도청 옥상에서 보초를 서는 한 시민군이 특전사대원에게 칼빈총 6발을 격발하였다.

특전사대원 2명(2019년 5월 16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방영한 특전사대원이다.)이 사망하고 탄환 1발이 특전사대원 옆에 서있던 박근혜의 어깨를 스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박근혜의 어깨에서 피가 흐르자 박세직 준장과 특전사대원들이 전남대로 퇴각하였다.

박근혜의 어깨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본 박정희는 분노에 휩싸였다.

박세직 준장이 박정희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박세직이 이를 갈았다.

5월 26일 300여명이 사망한 전남도청수복작전 비극의 서막이었다.

5월 20일 이후로 시민군에 대한 총살을 명령하였다.

대량학살의 시발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총상을 입은 박근혜를 치료하기 위해 전남기독병원 의료진이 왔다.

기독병원 의료진의 증언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전두환은 그 순간을 옆에서 지켜봤다.

 

1980년 5월 21일 아침 9시 전남대 부근으로 702 특전공수대원를 쫓아온 시위대에 격분한 박정희는 검붉은 양복을 입은 채로 M16소총으로 칼빈 소총을 들고 도망하는 시민군과 시위대를 향하여 조준 사격하여 30여명을 사살하였다.

전두환은 박정희 옆에서 탄창을 준비하는 등 박정희를 보조했다.

당시 M16소총을 소지한 5.60대의 키 작은 남성과 장교복을 입은 전두환을 목격한 목격자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한사람이 2019년 12월 용인 새에덴교회 담임목사 소강석이다.

박정희 일행에게 쫓긴 시민군인 소강석은 죽은 척 하려고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전두환에게 들켰다.

박정희는 엎드려 있는 소강석이 불쌍했는지 “넌 나를 보았다는 말을 하면 죽는다”라고 말하고 살려주었다.

옆에 있던 전두환이 소강석의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1980년 5월 21일 오후 2시부터는 전남대 앞에서 금남로에 이르기까지 박정희의 명을 받은 702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장인 김관진 중위와 정영철(정윤회로 개명)중사, 정진석(2019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일병 외 4명이 시위군중 70여명을 총 칼로 학살하였다.

시민들은 총칼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당해야만 했다.

정영철(정윤회로 개명)중사가 M16 소총을 자동으로 전환하여 시위대를 향하여 난사하였다. 30여명이 사망하였다.

어린 시절 전남 광주 동구에서 자란 정영철의 광기어린 태도는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702부대원들의 인사기록 사진과 광주 5.18 영상자료를 비교 분석하면 이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날 박정희는 최규하 대통령과 이희성 계엄사령관에게 전화를 하여 1980년 5월 21일 14시에 육군지원단을 동원하여 헬기사격명령을 포함한 공군작전명령을 내렸다.

1980년 5월 21일 14시 전일빌딩 옥상에 대한 헬기사격이 이루어졌다.

주한 미국 대사의 만류로 공군작전명령은 중단되었다.

 

1980년 5월 21일 오후 13시 박근혜는 발칸포 장갑차 발포명령자리에 앉아 도청 앞 시민군과 시위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전차 바로 옆에서 702연대 연대본부 작전과 소속 김무성 대위가 광주에서 박근혜 수행비서인 특전사 부사령관 박세직 준장이 자리를 비운사이 박근혜의 수행비서 대리를 하였다.

 

도청 앞 트럭에 올라탄 시위대 중 2~3명이 “박정희다.” 라고 소리쳤다.

죽은 박정희가 서울에서 광주에 내려왔다는 정보를 권노갑과 민주당 고 김상현이 주요 시위자들에게 전날 퍼트렸기 때문이다.

광주 시위대가 박정희의 생존사실을 세상에 알리면 감옥에 갇힌 김대중이 풀려날 수 있는 방도라 생각하였던 것이었다.

한화갑에게서 증언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김무성 대위가 이 소리에 깜짝 놀란 발칸포 장갑차 옆에 서 있던 박정희의 얼굴을 보았다.

김무성이 재촉한 발걸음으로 박정희에게 다가서며 “백린탄으로 쓸어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고언 하였다.

1980년 5월 21일 14시 10분 이 말을 들은 박정희는 702특공연대 무선통신 하사 김정봉(유원공고 전자과 졸업, 1996년 유원공전 전자공학과 야간 졸업, 2019년 5월 연합뉴스와 YTN 객원논설위원으로 NSC 정보실장으로 소개되는 인물)의 무전기를 들고 박근혜에게 지시하여 발칸포 장갑차 사수가 시민군과 시위군중에게 백린탄 5발을 발사하게 하였다. 이 백린탄으로 15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광주5.18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 도청 앞 시위대가 백색 불꽃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이다.

 

1980년 5월 21일 저녁 7시부터 702특전공수연대 1대대 1중대 부대원들이 박근혜의 백린포탄으로 사망한 시위대 150여구의 시신과 금남로 등에서 숨진 400여구의 시신들을 5월 22일 저녁 10시까지

 

전남 광주시 북구 야산(1980년 5월 장세동 부인 소유지~1984년 전두환 처남 고 이창석으로 소유권이전~1994년 말 국유지로 전환, 현재 광주 5.18 민주화 기념묘지 헌화탑 터 )에 구덩이를 파고 시신들을 던져 넣었다.

그 위에 봉분 3기를 놓았었다.

당시 시신 매장작업에 동원된 1중대원들 증언을 들을 수 있다.

 

김진표(본적: 경기 화성 정남면. 2019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는 중앙정보부에서 1980년 5월19일 정찰요원으로 설훈(2019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함께 광주에 파견된 인물이었다.

김진표는 1980년 5월 22일 702 특공대원들에게 광주 북구 암매장지로 끌려가 생매장 될 찰나에 김무성 대위에게 중앙정보부에 신원조회를 요청하여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이현종

1980년 5월 22일 오전 10시 암매장 작업을 한 702특전공수연대 연대 행정병이었다.

2019년 12월 현재 문화일보 객원 논설위원으로 채널A와 MBC 2시 뉴스에 출연 중이다.

당시 이현종은 이등병이었다. 이현종은 2019년 12월 국정원으로부터 월 500만원 받는 인물이다.

 

 

1992년 충청도 출신 부사관 4명과 강원도 출신 부사관 2명이 병사 10여명과 함께 광주 5.18 암매장지를 고발하기 위해 KBS 등 언론사들과 인터뷰를 섭외하였다.

MBC 심재철(2019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PD와 기자였던 이현종이 이 들을 안기부에 밀고하였다.

이일로 안기부는 부사관들과 10여명 병사의 오른팔을 절단하여 불구자로 만들었다.

2019년 12월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상리에서 팔이 절단된 박00중사가 건강원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1980년 5월 22일 광주 북구 암매장지 현장 지휘관이 702특전공수연대 연대본부 작전과 김무성 대위와 1대대 부대장 강창희 중령이었다.

육사 38기로 당시 육군참모부에서 광주에 파견된 백승주(2019년 12월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소위도 함께 있었다.

 

1980년 5월 24일 오전 10시 전남 광주 용두동 성당 조비오 신부와 염수정(2019년 천주교 추기경)보좌신부가 박정희의 요청으로 암매장 터에서 위령미사를 봉헌하였다.

조비오 신부와 염수정 추기경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때에도 국민 앞에 광주 북구 암매장지에 대한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전두환이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의 탈을 쓴 사탄’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염수정은 과거 안기부에서 매월 200만원과 현재 국정원으로부터 매월 500만원을 받고 있다.

 

 

1994년 남산 안기부는 광주 5.18 정리계획으로 1994년 말부터 광주 북구 야산 암매장터 지상에 5.18 민주화 기념 묘지탑을 조성하여 암매장터를 영구히 은폐하였다.

박근혜 제1국장의 아이디어였다.

전두환은 박근혜의 별명을 ‘꽤순이’라고 지었다.

왜냐하면 박근혜는 순간순간 머리쓰임이 비상하기 때문이었다.

박근혜는 누구도 생각 못하는 아이디어를 발상하곤 하였다.

 

1994년 안기부 제3국 김진현(본적: 경북 청도, 전 성남시장 오성수의 뒤를 이어 제3국장이 되었다. 광주 5.18 당시 전남대에 주둔한 702 특전공수연대 연대장 김진현 대령이다. 1995년 서울시립대 총장이 되었다. )국장이 1994년 광주 5.18 민주화 묘지조성 책임자였다.

 

1994년 안기부 추미애(2019년 12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보안계장과 정청래(2019년 12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사무원이 광주 5.18 암매장터 기밀 보안담당이었다.

 

1994년 광주 북구 야산 암매장터 기념묘지 터파기 공사 중 시신 20여구의 유골이 나왔다. 당시 공사현장 소장과 인부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

공사하기 위해 암매장터 바로 위에 레미콘 2대 분량의 콘크리트를 부어 다졌다.

그리고 암매장터 바로 위에 헌화탑을 조성하였다.

이런 이유로 현재 민주화기념묘지에 안치되어 있는 봉분 대부분은 시신이 없는 허묘이다.

2002년 광주광역시 북구 시설관리공단에서 민주화기념묘지 보수공사 중 유골 40여구가 발견되어 화장 처리했다.

2019년 12월 현재 광주광역시 북구 5.18 민주화 기념묘지 헌화탑 바로 지하가 남녀 1000여구의 시신이 묻혀있는 암매장터이다.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은 이 날 오후 2시경부터 전남대 부근에서 죽은 100여구의 시신을 전남대로 옮겼다. 시신들은 주민등록 소지자 70여명과 미소지자 30여명이다. 시신 중에는 경상남도 하동 부부 2명, 충북 청주 1명이 있었다. 사망자명단은 최세창이 가지고 있다.

 

1980년 5월 22일 새벽 2시부터 박근혜와 최세창 준장의 지시로 702특전공수연대 1대대 1중대 특공대원들이 시신들을 벌목용 톱으로 절단하여 전남대 뒤 소각장에서 화염방사기로 약 2시간에 걸쳐 소실하였다.

박정희는 시신소각 중 익은 살점을 떼어 오라고 한 다음 두어 점을 입에 넣고 씹었다. 박근혜 일행도 한 점씩 입에 넣고 씹었다.

 

시신타는 냄새와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관계로 소실을 중지하고 1중대 대원들이 남은 70여구의 시신을 5월 22일 저녁 9시 전남 광주 북구 암매장 무덤 옆에 묻었다.

약간의 남은 뼛 조각은 금남로 하천에 버렸다. 당시 전남대 주변에 살았던 주민들의 살타는 냄새가 진동했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1980년 5월 22일 광주교도소 외곽 가로수 옆에 특전사령부 1대대가 매장한 시신은 11구이다. 전북 임실 부부 1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부부 1명은 광주 북구 임야 암매장지에 묻혔다.

특전사령부 1대대 병력이 광주교도소 지하에서 시신 2구를 불에 태웠다.

1992년 10월 최세창이 국방부장관으로 재임할 때 채굴하여 화장해 가로수 옆에 뿌렸다. 가로수 조경공사 명목으로 작업하였다.

교도소 근무자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5월 20일 저녁식사와 5월 21, 22일 아침, 점심, 저녁식사를 전남대 부근 국밥집에서 식사를 하였다.

전두환은 박정희를 전남대 청소부로 소개하였다.

후에 국밥집 여주인들, 당시 시민군이었던 소강석 등 광주 5.18 주요 증인들은 안기부 관리명단(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려졌다.

안기부는 돈을 주어 광주 5.18 주요 증인들의 입을 단속하였다.

1992년부터 2019년까지 광주 5.18 대표라면서 각 종 광주 5.18 기자회견과 TV에 출연한 5.18 대표 중의 한 명이 전남대 국밥집 딸이다.

키가 작고 주옥순과 같은 외모가 특징인 여성이다.

소위 광주 5.18 대표단체의 구성원을 보면 광주 북구 암매장지에 영면하여 있는 분들의 유족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1980년 5월 26일 밤 10시 전남도청수복작전에서 사망한 시미군은 300여명에 이른다.

특전사 부사령관 박세직 준장은 진압부대원들의 사상을 최소화 한다는 구실로 전남도청수복작전에 신경가스수류탄을 사용하였다.

신경가스수류탄으로 200여명이 사망하였다.

작전에 참여했던 조범현 기아타이거즈 전 감독에게 증언을 들을 수 있다.

300여명의 시신들도 광주 북구 야산 암매장지 바로 옆에 묻혀있다.

암매장지에 총1000여명의 시신이 묻혀 있는 것이다.

정부는 조속히 암매장지를 발굴하여 유족들에게 유해를 반환하여야 할 것이다.

국민이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1990년 광주 5.18에 대한 국회의 특조위가 발동되고 국민 여론이 거세졌다.

남산 안기부와 보안사는 노태우 대통령 지시로 광주 5.18 당시 전남대에 주둔한 701, 702특전공수연대 1대대 간부들과 병사들 중 배신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색출하여 제거하는 정리계획을 수립하였다.

일명 백화사업이었다. 당시 백화사업(가칭) 책임자가 안기부 제3국 보안2과장 이병호(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장이 되었다.)이었다.

 

1980년 광주 5.18 당시 2군단 특전공수여단 702특전공수연대 연대 상사로 진압 작전에 참여했던 김원웅 상사(본적: 충남 청양, 2019년 12월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김진태의 아버지이다.)는 진급을 거듭하여 1990년 소령으로 강원도 화천 간동면 오음리 2군단 특전공수여단 702특전공수연대 1대대 부대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김원웅은 1980년 광주 5.18 당시 박정희를 목격한 인물로 경상도 외 출신으로 배신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지목되었다. 술자리에서 박정희의 생존사실을 말하곤 하였기 때문이다.

1990년 7월 5일 밤 10시 안기부 작전1과 김무성(2군단 특전공수여단 702특전공수연대 본부에서 1975년 말~1981년 말까지 군 복무한 자다.)과장, 작전3과 계장 이병기외 2명에게 부대 밖 오음리 술집에서 독침으로 암살당했다.

시신의 입술이 검붉었다.

당시 술집 여종업원 정00가 김무성과 이병기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하사계급 이상 간부로 충청도 출신 4명, 강원도 출신 2명이 암살당했다.

2019년 12월 김진태는 자신의 아버지가 근무 중 과로로 사망한 것으로 믿고 있다.

 

이병기

본적: 전북 익산

이리공고 기계과 졸업 후 하사로 입대

1980년 5월 20일 광주 조선대에 주둔한 701특전공수연대 1대대 소속 군수계 이병기 중사로 조선대 여대생을 집단 강간하였다.

광주 시위대 진압작전용 화염방사기를 수송. 보급했다.

1982년 2월 남산 안기부에 특채되어 제1국과 제2국을 오가며 살수로 활동하였다.

이병기의 인터넷 경력 사항에 서울대 졸업과 외무고시 합격은 날조된 것이다.

서울대 학적과에 문의하면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장과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다.

 

백옥자

본명: 백경숙, 연애인 김승현의 친모

본적: 전남 광주

광주 5.18 당시 조선대 불문학과 재학

백옥자는 1980년 5월 20일 광주 조선대에서 강간당한 여대생 중 한명이다.

2019년 12월 KBS2 ‘살림남’과 서울우유 CF, 국민건강보험공단 공익광고에 출연 중이다.

전여옥과 조선대학교 불문학과 선후배이다.

1983년 공무원 9급 공채로 전남 광주시청에 입사하였다. 살림남에 출연하는 연애인 김승현과 남동생은 1984년에 백경숙이 낳은 쌍둥이다.

전여옥의 추천으로 1985년 4월 안기부에 전보 특채되어 활동하였다.

1987년 KAL 858기 폭파공작 당시 안기부에서 1차 선발조로 문재인 기획조정실장보와 함께 이라크 바그다드 주재 한국대사관에 파견된 인물이다.

1997년 안기부에서 전남 광주시청에 전보하여 2003년까지 근무하였다. 2007년에 경기 김포로 이주하였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 광주 5.18 암매장지 관련 첩보보고가 임무인 국정원 기관원으로 활동하였다.

김대중 정부 가칭 ‘과거사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에 출석하여 1980년 5월 20일 조선대에서 강간당한 사실 있다고 진술을 하였다.

 

702특전공수연대 장병들은 북한에 침투하는 전술훈련 과정으로 인민군 복장과 AK소총을 소지하고 북한군으로 위장하는 훈련을 한다.

여기에 역발상을 한 702특전공수연대 출신인 안기부 김무성(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제1국 주임이 1984년에 광주 5.18에 북한군이 침투하였다는 북한군 개입설을 기안하였다.

박정희가 김무성의 기안을 받아들였다. 이후로 김무성이 출세하는 기반이 되었다.

남산 안기부 제3국 3계장 지만원(보안사에서 파견나온 인물)이 1984년 7월부터 북한군 개입설 공작에 착수하였다.

1982년 의령학살 때 북한에서 데려온 인민군 박지원(2019년 12월 민주평화당 국회의원), 강명도(2019년 경기대 교수), 김흥광, 조명균(전 통일부 장관)은 광주 5.18에 북한군이 개입하였다는 안기부의 공작 시나리오를 작성하는데 동원되었다.

 

2004년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진상위원회 ‘광주 5.18 특별 분과위원회’에 민간인 참여위원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위 민변 출신의 김남근, 장유식(2018년 국정원개혁위원, 변호사 이수희와 고려대 동기)변호사 외 5이 참여하였다. 결과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2019년 12월 문재인 정부도 똑 같다. 정치적인 쇼일 뿐이다.

 

1988년 노태우 정권부터 2019년 문재인 정권까지 30년을 ‘광주 5.18’에 대한 수많은 정치인들의 기자회견과 KBS. MBC. SBS. JTBC 등 방송사의 기획보도와 거짓증언들을 보고 들어왔다.

국민은 언제까지 이들을 보고 들어줘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