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에소개된 내용입니다.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문을 정리했다는 강원국씨의 글쓰기 연재기고 글입니다.
글쓰기에 대해서 아주 정리를 잘 해놓은 것 같아요. 참고해서 시간될 때 읽어보세요.
[blockquote]분명히 말한다. 이 글에서 털끝만큼의 재미도 기대하지 마시라. 글은 세 종류가 있다. 재미있는 글, 의미 있는 글, 쓸모 있는 글. 이 글은 유용한 글이다. 재미와 의미는 없을지 몰라도 안 읽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글이다. 나중에 딴소리 마시라. 진즉 이 글을 읽었으면 글쓰기 고통의 절반을 덜었을 텐데, 왜 읽으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나도 헷갈린다. 과연 이것이 글쓰기 칼럼인가, 글쓰기의 알라딘 램프인가.
내가 글을 쓰며 알게 된 열여섯 가지 방법이다.
첫째, ‘지식’으로 쓰는 방법이다. 세 가지만 갖추면 된다. 남이 모르는 지식을 찾을 수 있고, 찾은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으며, 그것에 자기만의 해석(코멘트)을 달 수 있어야 한다.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이게 쉬우면 누구나 유시민이 될 수 있게?
둘째, ‘요약’으로 쓴다. 이 방법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글쓰기가 어렵다. 많은 생각을 정리해서 써야 하기 때문이다. 글은 할 말이 없거나, 너무 많아서 쓰기 힘들다.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는 하고 싶은 말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려고 하지 말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종이나 모니터에 풀어놓고, 눈으로 보면서 요약 정리하면 된다. 관건은 풀어놓은 말의 양이 많아야 한다. 양이 많으면 질은 만들어진다. 곰탕을 졸이면 진국이 나오듯.
셋째, ‘주제’로 써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글을 쓰기 전에 내게 물었다. “무슨 말을 하지?” 말하고 싶은 한 문장을 찾았다. “그래, 이것으로 하자. 이걸로 하면 되겠다.” 그 문장을 찾았을 때 기뻐했다. 그 문장은 ‘무엇은 무엇이다.’ 혹은 ‘무엇을 합시다.’ 또는 ‘무엇이어야 합니다’였다.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있는 것에 살을 붙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 근거, 사례, 예시를 추가하다 보면 글은 완성된다.
넷째, ‘모방’으로 쓰자. 세 단계다.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벤치마킹 모델을 선정하는 일이다. 나는 강준만 교수를 골랐다. 두 번째는 그의 칼럼을 30편 출력해 세 번씩 읽었다. 그의 문체를 닮고 흉내 내게 됐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그가 글을 써내려간 순서대로 따라 썼다. 일화로 시작하면 나도 내 일화로 시작했다. 고사성어를 인용했으면 나도 내 주제에 맞는 고사성어를 찾아 소개했다. 이렇게 따라 쓰다 보니 강준만 교수의 글의 전개 방법, 글쓰기 수법을 알게 된다.
다섯째, ‘첫 문장’으로 쓰자. 우선, 첫 문장을 처음부터 쓰지 않는다. 쓰다 보면 좋은 첫 문장이 떠오른다. 첫 문장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다. 절실히 간구하면 길을 걷다가, 혹은 머리를 감다가 첫 문장을 영접하게 된다. 첫 문장 유형을 공부하는 것도 좋다. 소설과 칼럼의 첫 문장을 연구해보라. 그리 많지 않은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서 자신에 맞는 패턴을 가져다 쓰면 된다. 끝으로, 첫 문장은 짧아야 한다. 그리고 뜬금없어야 한다. 그래서 궁금하게 해야 한다. 이 글의 첫 문장을 참고해보시라.
여섯째, ‘문단’으로 쓰자. 긴 글을 쓰려고 하지 말라. 한 단락의 짧은 글을 쓰자. 그리고 조립하자. 단편을 써서 장편을 만들자. 긴 글은 쓰기 어렵지만, 짧은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포스트잇에 쓴다 생각하고 조각 글을 써서 이리저리 꿰맞춰 조합하자. 레고 블록을 꿰맞춰 집을 짓고 자동차도 만들듯이.
일곱째, ‘재미’로 쓴다. 두 가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관심사와 꿈이다. 내가 알고 싶고 좋아하는 테마가 있거나, 이루고 싶고 하고 싶은 목표가 있으면 된다. 그것에 관해 쓰는 일은 재미 정도가 아니라 흥분에 가깝다.
여덟째, ‘감정’으로 쓴다. 나는 화가 났을 때, 고마울 때 잘 써진다. 분노와 감사가 나의 글쓰기 힘이다. 이런 감정을 찾아서 써보라. 누구나 글이 잘 써지는 감정 상태가 있다.
아홉째, ‘비판’으로 쓰자. 남의 주장을 빌려 내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는 방법이다. 일방적 주장은 먹히지 않는다. 내가 주장할수록 독자는 자기주장을 찾는다. 그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예봉을 꺾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1번 나의 주장을 쓴다. 2번 주장을 부연 설명한다. 3번 나와 다른 주장을 소개한다. 4번 그 주장을 평가한다. 5번 다른 주장과 내 주장을 합치거나, 다른 주장을 반박해 내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면 끝이다.
열째, ‘자료’로 쓴다. 나는 글쓰기 전, 써야 할 글의 핵심 단어를 세 군데 검색창에 쳐본다. 포털에서 몇 편의 칼럼을 찾아 읽고, 유튜브에서 제목에 그 단어가 들어간 동영상 강의를 한두 편 듣고, 온라인 서점에 가서 몇 권의 책 목차를 본다. 이러고 나면 글의 실마리가 풀린다. 졸가리가 잡히기도 한다. 나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열한째, ‘함께’ 쓰자. 굳이 혼자 쓰려고 하지 말자. 글쓰기라는 험한 길을 함께할 글동무를 만들자. 내게는 아내가 그런 존재다. 보여주고, 의지하고, 배우고, 격려받는 그런 글쓰기 친구다.
열두째, ‘관찰’로 쓰자. 어렵지 않다. 보이는 대로 묘사하면 된다. 보이는 것 그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의 심정, 처지, 사정을 헤아려 쓰거나, 보이는 현상의 이유, 원인, 전망을 찾아 쓰면 된다. 관심을 갖고 잘 보면 쓸 수 있다.
열셋째, ‘질문’으로 쓰자. 질문지를 작성하거나 물어보거나, 두 가지만 잘하면 된다. 쓰고자 하는 주제에 관해 궁금한 것의 목록을 작성해보자. 목록만 만들어지면 답은 알 수 있다. 설사 답을 모른다면 누군가에게 물어보자. 아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열넷째, ‘메모’로 쓰자. 글은 글을 쓰는 시간에 쓰면 잘 안 써진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거나 카페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에 써보라. 그렇게 쓴 메모로 글을 완성해보자. 나는 자투리 시간에 잘 써진다. 글을 써야겠다고 정색하고 노트북 앞에 앉는 때보다는.
열다섯째, ‘목적’으로 쓰자. 모든 글에는 목적이 있다. 목적에 충실한 글을 쓰면 된다. 반성문을 쓰게 하는 목적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게 해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자기소개서를 받는 이유는 그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리포트 숙제를 내는 것은 공부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리포트에서 공부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사과문에는 피해받은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어떻게 복구, 보상해줄 것인가를, 거절하는 글에는 거절하는 사유를 밝히고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을, 부탁하는 글에는 그것을 들어줬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말해줘야 한다. 그래야 글 쓰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열여섯째, ‘관계’로 쓰자. 독자를 위해 쓰는 것이다. 이렇게 쓰기 위해서는 독자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독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그것을 글에 담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며, 내 글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독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쓰는 것이다. 독자가 내 글을 읽고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쓰는 것이다. 이런 마음만 있으면 못 쓸 글이 없다.
쓰다 보니 너무 많은 것을 풀어놨다. 글쓰기 강의에 지장이 막대할 것 같다. 내 강의에 올 수 없는 <한겨레> 독자에게 서비스했다고 친다. 하지만 이 글을 공유하진 마시라. 그건 스포일러다. 범죄행위다. 내 밥그릇을 뺏고, 앞으로 연재할 내용에 대한 독자들의 흥미를 빼앗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경고에도 굴하지 않고 이 글을 퍼 나르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한겨레> 가족이다. 대한민국을 넘어 온 인류가 글쓰기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글에서 평화와 행복을 얻기를 염원하는 사람이니까.
강원국(<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blockqu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