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늘 한턱낼게!”
30대 직장인 C 씨는 금요일 저녁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한턱 내겠다”는 말을 던졌다. 삼겹살과 소주로 1차를 기분 좋게 끝내고 계산을 마친 C 씨는 2차를 가자는 일행의 말에 멈칫하게 된다.일상에서 종종 이런 고민을 해본 경험 있으실 것이다. 밥이나 술을 한턱내기로 한날, 도대체 어디까지가 ‘한턱’인 걸까? 1차, 2차로 나뉘는 자리가 기준이 되는 걸까? 아니면 그날 하루 먹는 음식은 모두 한턱인 걸까? 한턱의 기준을 정한 재미있는 판결을 소개하겠다.
‘한턱’이라는 말은 ‘한턱을 내다’, ‘한턱 쏘다’라는 표현으로 일상에서 자주 사용된다. 한턱이라고 하면 신체 부위인 턱과 관련된 말인지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는데 사실 한턱은 순우리말로 단어 자체에 ‘한바탕 남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1997년에 있었던 판례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한턱의 기준을 두고 법정 다툼이 벌어졌다. 지난 1996년 9월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A 씨와 B 씨는 화해를 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고 A 씨가 화해주의 의미로 “한턱내겠다”고 말했고 두 사람은 동네 술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술값으로 나온 금액은 90만 원.예상했던 금액을 훌쩍 뛰어넘자 A 씨는 “애초에 술값이 30만 원 정도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며 B 씨에게 술값을 나눠내자고 제안 하지만 B 씨는 “한턱내겠다고 했으면 술값 모두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A씨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두 사람의 다툼은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되었다.
당시 사건을 맡게 된 서울지법 남부지원의 박해식 판사는 고민에 빠졌다. 사전적으로나 법적으로 정의된 한턱의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같은 문제로 조정신청을 한 판례도 없었기에 박 판사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사건을 회상하며 “한턱의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 위해 고민이 많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 판사는 A 씨와 B 씨의 가족, 친척, 방청객의 의견을 모아 “한턱을 내겠다고 한 사람은 처음 주문한 술과 안줏값 20만 원만 부담하고 애초 예상할 수 없었던 나머지 술값 70만 원은 두 사람이 35만 원씩 나누어 내라”는 판결을 내렸다.’본인이 처음에 스스로 주문한 술과 안주 가격’이 한턱의 기준이고 이후 다른 사람이 주문하거나 추가된 메뉴에 대해서는 나눠서 돈을 내야 한다는 판결를 내렸다. A 씨와 B 씨는 박 판사의 판결에 수긍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김정임 기자>